-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낸 말씀
- 운영자 2017.10.15 조회 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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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낸 말씀
(계 3:7-13)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오늘 말씀은 과거에 아름다웠던 한 교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교회로서 좋은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살다보면 성공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슨 차이일까? 성경에 보면 이삭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삭은 그 당시에 거부가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실 인간적으로 보면 이삭은 부자가 될 가능성이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부자가 되려면 좀 철저하고, 악착같고, 고집도 있고, 집착도 있어야하는데 이삭은 이런 것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이삭이라는 사람은 겁쟁이입니다. 아내 때문에 거짓말을 하고 자기 목숨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싸움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파놓은 우물을 뺏깁니다. 뺏기고는 달라는 말도 못하고 그냥 다른 곳으로 갑니다. 이삭은 부자 될 만한 가능성이나 기질이 보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집념이 있던지 결단력이 있던지, 무서운 도전정신이 있던지 그래야 성공하는데...이삭을 보면 전혀 아닙니다. 그런데 그가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 상황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 26:12-13) 『[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답은 한 가지입니다. “여호와 께서 복을 주시므로....”
하나님의 마음에 들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면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을 열어주십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도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을 잘 믿다가 중간에 실패한 사람입니다. 여자로 인해 간음죄와 살인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러한 그가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중에 한명으로 기록되게 됩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행 13: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면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의 문을 활짝열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반면 하나님께서 인생의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인간의 수고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 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는 사람들을 보면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에 안될 것 같은데 이상할 만큼 잘 됩니다. 인생이 풀리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삶에 하나님의 도움이 있습니다. 중요한 순간에 지혜를 주십니다. 능력을 주십니다.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인생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빌라델비아 교회는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은혜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예수님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계 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하나님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하나님이 닫으면 열 사람이 없습니다. 인생의 열쇠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열어주셔야 사람이 복 받는 것입니다. 몸부림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러다 안되면 병만 얻고, 성질만 버립니다. 화만 납니다. 하나님이 도우셔야 합니다.
이렇게 인생의 열쇠를 가진 하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8절을 보십시오.
(계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께서 축복의 문을 열어놓았습니다.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십니다.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하나님이 열어주셨으니 사람이 막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열어 주신 축복의 기회를 자주 놓치는 것이 문제입니다.
기회라는 것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사에는 때가 있다고 합니다. 문이 닫힐 때가 있고 열릴 때가 있습니다. 해가 뜰 때가 있고, 해가 질 때가 있습니다. 건강 할 때가 있고, 병들어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살아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이지 죽은 후에는 아무것 도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은혜 받는 때도 있고, 구원의 날도 있다고 했습니다. 부흥의 때도 있습니다. 침체의 날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도를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문이 열려있는 때를 놓치지 않는 지혜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문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골로새서를 향해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골 4: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오늘 우리들도 이러한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문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때를 볼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은혜를 위해서 기도하고 깨어있어야 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이 기회를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보았고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요? 이 이유가 바로 주님이 보시는 칭찬의 조건이자, 문이 활짝 열어주시는 은혜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이 교회 성도들은 큰 능력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능력자체만 보면 적은 능력입니다. 그러나 적은 능력을 가졌지만 신실했습니다.
대충 산 것이 아닙니다. 능력은 적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능력은 적은데 말씀대로 살려고 하니 힘들죠, 그런데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도 않았습니다. 많이 받고도, 큰 능력을 가지고도, 상황이 어려우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빌라델비아 사람들은 적은 능력 줬다고 불평하지도 않았습니다. 더구나 이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무슨 큰 일 한 것 없습니다. 능력이 작기 때문에 할 수 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한 것이라고는 하나님 말씀 지키며, 하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성전을 건축했다든지, 선교의 업적을 남겼다든지,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했다든지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하고 싶어도 능력이 안 되니까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아십니다. 적은 능력을 주었다는 것을 아시기에 큰 일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주신대로 요구하시지 적게 줘놓고 많이 내놓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적게 받았지만 주어진 여건 속에서 충성했습니다. 누구는 이렇게 많이 주면서 난 뭐냐? 기분 나빠서 못 믿겠다 하면서 대충 산 것 아닙니다. 적은 대로 충성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주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 같은 교회는 많이 받았습니다. 큰 일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복 주시지 않았습니다. 첫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다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사는지 보고 계십니다. 왜 이렇게 주목해서 보고 계십니까? 복 줄 사람을 찾으려고 보고 계십니다. 그 사람에게 하늘 문을 활짝 열고 맘껏 축복하시려고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금도 하늘 문, 인생의 문, 축복의 문을 열어주고 싶어하십니다. 좋으신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이라도 합당한 사람만 찾으면 당장 열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복의 문은 아무에게나 열리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열릴까요? 본문말씀처럼...
어렵고 힘든 상황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치 않고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
구하면 주신다는 말씀 믿고 끈질기게 기도하는 사람,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 주신다는 말씀 믿고 끝까지 충성하는 사람,
아무런 이적이나 표적이나 사인이 없어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
인생이 잘 안 풀리고 시험에 떨어지고 기도응답도 없는 것 같아도 변함없이 예배자리를 지키는 사람....
주변의 핍박이 있고, 조롱이 있지만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고 변심하지 않는 사람....
처음 가진 믿음을 끝까지 지킨 사람--이런 사람들에게 하늘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말씀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이 주시는 열린문은 깨어있어 말씀을 지키며 인내로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열려지는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네 가지의 문이 열렸습니다. 또한 이것은 현재뿐 아니라 미래의 약속이기도 하십니다.
첫째, 원수를 이기는 은혜입니다.
(계 3: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자칭유대인이라고 하나 사탄의 모임인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와서 스스로 굴복하는 은혜를 주신다고 하십니다. 이 말은 승리의 은혜입니다.
나의 믿음을 공격했던 사람들, 나를 조롱하고 핍박했던 사람들...
거짓말로 나를 비방했던 사람들..... 모두를 이기는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는 은혜입니다. 이것은 약속이기도합니다.
(계 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저는 이 말씀이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됩니다. 마지막때가 되면 성도들이 시험과 환난을 당한다고 합니다.
(막 13:9)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이러한 환난의 때에 하나님께서 은혜의 문을 여시면 시험과 환난을 면하게 되는 은혜를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심지어 순교의 잔이 채워져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계 6:11)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이러한 때에 면하게 하시는 은혜를 누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시는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은혜의 때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셋째,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계 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성전의 기둥이 되게하시는 은혜입니다. 기둥은 건물을 떠받이는 중요한 기둥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성전의 중요한 인물이 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공동번역성경(계 3:12) 『승리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성전 기둥이 되게 할 것이다. 그는 결코 성전을 떠나지 않게 될 것이다. 나는 그에게 하나님의 이름과 하늘로부터 내려올 새 예루살렘, 곧 하나님의 성 이름을 기록할 것이다. 또한 나의 새 이름도 그에게 기록할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할 것인데 그는 결코 성전을 떠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결코 떠나지 않게 된다는 것은 성전에 영원히 거한다는 말입니다.
성전이 무엇입니까? 구약에서는 성막, 성전으로 신약에서는 교회, 그리고 우리들의 개개인이 성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우리 개개인이 성전이라는 것은 성령이 거하시는 곳으로서의 의미입니다. 이처럼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으로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끝까지 말씀의 지키며 이기는 성도는 영원히 하나님의 임재속에 성전의 기둥이 되는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의 교회이든, 나중에 주님오실 때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에서든지 마찬가지입니다.
성도의 가장 큰 은혜는 무엇입니까?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끝으로 이러한 열려진 은혜의 문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게도 우리에게도 중요한 것입니다.
[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지키는 것입니다. 빌라델비아가 가진 것은 말씀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굳게 잡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말씀에서 믿음이 나오고 자라며, 말씀에서 능력이 나옵니다.
성도의 삶의 중심에는 늘 말씀이 있어야 하고 이 말씀을 따라 인내하며 주님 오실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말씀에 거하고, 붙잡으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며 말씀을 따라 살아가려고 노력하십시오.
이기는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될것입니다. 여기 계신 모든 성도님들이 말씀의 사람이 되어 주님오시는 날 까지 승리의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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